이사날 짐을 나누며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는다


지난 토요일, 오전 8시 반. 우리 아파트 3층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 박스들이 쌓였다. 박스마다 메모가 붙어 있었다. ‘가져갈 것’, ‘주차장에서 본인 확인’, ‘기증함’. 손에 든 펜으로 박스 하나씩 더 정했다. 가슴이 무겁지는 않았지만 움직임이 잦아지자 속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무엇부터 손댈지 망설였다. 옷장 깊숙이 넣어둔 옷, 사용 빈도가 한 번도 없던 주방용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물건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으며 세 가지 분류로 나누기 시작했다. 바로 포장할 것, 이사 당일에 결정할 것, 이웃이나 기증처로 보낼 것. 작은 스티커로 색을 표시했다. 색 하나당 행동이 정해졌다. 표시를 끝내자 동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이동 수단과 인력 문제를 정리해야 했다. 여러 업체의 요금과 도착 시간을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는 시스템을 이용했다. 화면에는 차량 종류, 예상 소요 시간, 이동 가능 시간대가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큰 글로 쓰인 가격표를 들여다보듯 차근차근 항목을 봤다. 차량 적재용량과 주차 조건, 추가 인력 유무를 기준으로 몇 가지 옵션을 골랐다. 즉흥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사진으로 가구 크기와 계단 상황을 찍어 두었다. 화면에서 본 항목과 실제 상황을 대조했다. 계단 폭이 좁아 소형 트럭으로는 힘들겠다는 판단이 섰다. 일정 조율은 전화 대신 시스템을 통해 진행했다. 도착 예상 시간이 오전 11시로 잡혔다.

태블릿 화면에서 이사 차량 종류와 추가 인력을 선택하는 라인 드로잉
이사 업체 예약 시 ‘추가요금’ 정의
추가요금은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인건비·주차료·계단·엘리베이터 사용료 등으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동·포장 서비스 관련 소비자 상담에서 추가요금과 파손 민원이 빈번하게 접수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출처: 한국소비자원 https://www.kca.go.kr/

이사 당일, 기사님과 일꾼들이 도착했다. 주차 공간이 좁아 골목에서 품앗이 하듯 주차를 부탁했다. 옆집 아저씨가 차 한 대를 움직여 주었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박스에 붙인 색과 메모를 보여줘서 동선이 매끄러웠다. 무거운 가구는 먼저 분류한 것 가운데 당일 결정 카테고리에서 꺼냈다. 현장에서 크기를 재고 설치 가능 여부를 다시 확인한 뒤 바로 내려놓았다. 현장에서 작은 가전과 식기 몇 점은 기사님들과 함께 분해하거나 포장했다. 기사님들이 포장하면서 ‘이건 버려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이미 표시한 대로만 움직였다.

짐을 나누는 과정에서 이웃과 짧은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문고리 하나, 작은 화분 하나는 말로 주고받지 않아도 건넬 수 있었다. 기증할 상자들은 정해진 장소에 따로 쌓아 두었다. 마지막으로 차에 실리지 못한 물건 몇 개는 내가 다시 골라 사진을 찍어 기증 담당자에게 전달할 준비를 했다. 정리한 목록과 사진이 있으니 전달 과정이 수월했다.

기증 물품 정리·전달 팁
기증처는 물품 수거 기준과 수락 품목이 다르므로 사전에 목록과 사진을 보내 확인하면 재수거·반송을 줄일 수 있습니다. 사진과 목록을 정리해 전달하면 기증 담당자가 수령 여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출처: 대한적십자사 https://www.redcross.or.kr/

결과는 단순했다. 짐을 나누면서 차량 선택과 일정이 맞물리자 움직임이 매끄러워졌다. 옷장 한 칸 분량의 물건을 이웃과 나누고, 주방용 소품 몇 점은 기증함에 넣었다. 남은 박스 수가 확 줄어 들었고, 이사 당일에 쓸 수 있는 동선이 확보되었다. 체감 시간도 줄었다. 이전에는 무작정 지하주차장에 쌓아 두고 옮기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포장 단계에서 공간과 이동 수단을 고려한 덕분에 현장에서의 판단이 줄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며 분류된 박스들과 스마트폰으로 차량을 선택하는 모습

결국 이렇게 하게 되었다. 짐을 미리 분류하고, 실제 상황을 사진과 수치로 정리해 관련 항목을 살펴본 뒤 일정과 차량 조건을 맞춰 움직였다. 작은 표시 하나가 현장에서의 결정 부담을 덜어 주었다. 이사라는 물리적 노동은 남지만, 물건을 나누는 과정은 수고를 줄여주었다. 다음번에는 더 빨리 표시를 붙이고, 작은 가구는 사전에 이웃에게 먼저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한다.